제목 : 크리스마스를 회고하며 동성로를 걷다 등록일 : 2003-12-29    조회: 606
작성자 : 53회 노성환 첨부파일:
매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는 인파로 가득한 대구의 동성로 거리에 오는데, 물건 파는 사람 외에 늙은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이곳에 나름대로의 기쁨을 가지고 혼자 이곳 저곳을 다니곤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 놈들을 앞세우고 다녔지만 다 큰자식들이 이제 부모와 이날을 함께 할 리도 없고 , 추운데 머 할 라고 하는 마누라 또한 함께 할 리 없으니...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이 교회에 열심이었기에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교회의 새벽 송을 하러 갔었다. 다니는 교회는 신천교 넘어 옛 신도극장과 농협 경북도지부 부근에 있는 신광 교회라는 조그마한 신설 교회였다. 지금은 교회도 엄청 커졌지만 당시 이 부근은 도회지 변두리로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 촌이 양지바른 산중턱에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속한 10명 정도의 팀은 밤 12시쯤 교회를 출발하여 인근의 피난민촌 구석구석을 누비고는 경북대학교 부근의 몇몇 군부대 초소도 방문하고, 대구 측후소를 지나 영신 고등학교 부근 소래 못 주변을 돌아 새벽 5시쯤 되어 교회에 당도하는 것이다.
암울하고 참담했든 그 시절 등불을 들고 교우들이 부른 크리스마스 찬송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대 후반 서울 중심지 명동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명동은 금융과 유행의 중심지였고 또한 온갖 맛있는 음식점이 많아 나를 더욱 즐겁게 해주든 곳이었다.
이 명동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지금도 좋은 추억거리로 가슴속에 남아 있는데...당시만 하드라도 ( 1970년대 후반기) 크리스마스 이브는 하나의 큰 축제 같았다.

이날이 되면은 나는 늘 미도파 백화점에서 내려 지하도를 지나 명동에 들어오는데 그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구세군들의 멋진 연주였다. 제복을 잘 차려 입은 키 큰 4명의 금관악기 연주자들은 너무나도 솜씨가 좋아서 한동안 그곳에 머물게 한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요란한 가운데서도 그들의 18번 곡 joy to the world 는 거의 환상적이었다.

눈을 들어 명동성당 쪽을 보면 인파로 꽉 차서 저 인파 속을 어찌 뚫고 나가야 될지 염려스럽기까지 한데...많은 가게들은 나름대로의 장식을 하고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려주었고 또한 음반 가게가 성업이든 그 시절, 곳곳에서 멋진 캐럴을 크게 틀어 놓아 흥을 돋우는 것이었다. 빙 크로스비. 후랑크 시나트라. 팻 분 등의 감미로운 음성이 거의 거리를 도배하고...

그 활기찬 거리도 늦은 밤이 되면은 인적이 조용하여 나는 명동성당을 찾아간다.
약간 언덕을 올라 고풍스럽고 위엄이 가득 찬 성당 안에 들어서면 2층에는 바이올린과 첼로 등 10 여명으로 구성된 연주자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는데 너무너무 듣기가 좋았다.
장엄하고 기품 있는 명동성당 , 2층에서 연주되는 o holy night 는 거의 천상의 소리로 인식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동성로에 매우 친근감이 있었고 이날도 결국 옛날 즐겨 오든 송죽극장 앞에 오게된다.
한때 대구에서 가장 번화하든 거리...향촌동-자유극장-송죽극장-교동시장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인적이 드물다. 송죽극장에서 대구극장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 ...그 옛날 솜씨 좋은 아줌마들이 우동과 오뎅 , 호떡, 떡볶이 등을 팔든 곳은... 너무 어두워서 들어서기도 섬뜩하다.

송죽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고 이곳에서 군것질하는 것이 가장 행복했든 아이는 이제 한 마리 늙은 곰이 되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릴없이 이곳 저곳을 다니고 있다.
그 어느 곳을 가나 크리스마스 캐럴 하나 거의 들을 수 없는 이 삭막한 동성로 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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